• 추석 '고시레' 풍경 / 고시레 유례와 의미를 알아보자.
    Life/knowledge 2020. 10. 1.

    나 보다 조상님과 웃어른을 먼저 생각하는 한국인의 넓은 인정이 담겨 있는 고시레 풍습은 추석 명절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고시레의 유래는 여러 설이 있지만 공통적인 의미는 풍년을 기원하는 뜻이 담겨 있으며 아무리 적은 음식일지라도 서로 나누어 먹는 우리나라 인심이 담겨 있는 하나의 풍습이라 할 수 있다.

     

     

     

     

    고시레
    안전과 만선을 기원하는 고시레 풍경

     

     

    고시레의 유래와 의미

    출처: 청주경씨사이버모임 글쓴이: 雲影

     

    할아버지나 아버지들이 성묘를 가거나 낚시를 할 때 성묘 후, 음식을 숲에 던져주면서 혹은 낚시의 밑밥을 주면서 흔히들 " 고시레" 혹은 "고수레" 하고 외치는 경험을 누구나 한두 번쯤은 했을 것이다. 과연 이 "고시레" 라는 의미는 무엇이며, 어디에서 유래했을까? 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옛말로써, 소규모의 기원제나 고사를 의미하는 말로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 재미있는 해석이 있어서 소개하고자 한다.

     

    고시레는 동이족의 전설의 신인 "고신씨"를 가리키는 단어로써 고신씨는 예로부터 악기와 음악 문화의 군주로 알려져 있는데, 우리의 조상신인 고신씨를 기리기 위한 풍습에서 "고수레" 혹은 "고시레"라는 단어가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이 제곡 고신씨와 관련이 있는 유명한 이야기로, 우리가 흔히들 사용하는 "남녀칠세부동석" 이란 말의 유래도 이 제곡 고신씨와 관련이 있다 하겠다.

     

     

    ■ 들판의 고시레

      시골 농부들은 밭일 혹은 논일을 하다가 점심식사를 할 때 반드시 식사 전에 밥 한술을 떠서 던지며 “고시레(고스레)” 하고 외치는 버릇이 있다. 밥이 아닌 떡을 먹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이 관습은 비단 시골 농부뿐만 아니라 도시민과 학생들도 지키는 등 거의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봄에 꽃놀이, 가을에 단풍놀이를 간 행락객들, 그리고 소풍간 학생들도 어김없이 준비한 도시락이나 음식을 먹기 전에 떼어 던지며 농부들처럼 “고시레”를 외친다. (지방에 따라서는 고씨네 라고도 함) 이런 버릇은 왜 생겨난 것일까? 그리고 고시레의 의미는 무엇일까?

     

      서정범교수는 이를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굿을 할 때나 음식을 먹을 때 조금씩 떼어서 ‘고스레’ 하며 사방에 던진다. 이렇게 하면 음식 먹은 게 체하지 않고 건강이 유지된다고 여기고 있다. 옛시조의 종장에, ‘고스레 고스레 사망일게 하오쇼셔’란 글귀가 있다. ‘고스레’가 여기서는 소망을 이루게 해주는 주체가 된다. 소망을 이루게 하는 것은 신일 것이며, 그것은 복을 주는 복신일 것이다. 일본에서 약을 ‘구스리’라고 하는데 이 ‘구스리’가 ‘고스레’라고 하는 말고 비교가 된다. 옛날에 병이 들면 ‘굿’으로 병을 고쳤는데 ‘고스레’는 ‘굿’이라고 하는 말과도 연관된다. ‘굿’이란 뜻도 복을 주는 신, 행운을 주는 신의 뜻을 지니고 있다. 병 굿을 할 때 ‘고수릿대’ 라는 게 있는데, 참나무의 윗가지를 잘라서 쌀을 담은 그릇위에 꽂았다가, 병자에게 붙어 있는 귀신을 쫒는 구실을 한다. 결국 ‘고스레’라는 뜻은 복신으로 건강을 지켜주는 신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어원별곡>

     

      그러나 나는 서교수의 견해와 달리 해석한다. “고시레”의 의미와 내력은 여러 고을에서 전해지는 아래의 민담이 풀어준다고 생각한다.

     

     민담1

      옛날에 고시네란 노파가 있었는데, 항상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농부들로부터 음식을 얻어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 그 이듬해부터 심한 가뭄이 들었다. 이 때문에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미리 떼어 던지면서 “고시레”라고 하게 되었다. 안동지방의 이 전설은 굶어 죽은 고시네 노파를 위로하여 풍년들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음식을 떼어 준다는 것인데, 충남 당진에서 채집된 전설은 고씨네 홀아비가 굶어죽은 사연이다.

     

     민담2

      옛날 어느 두메에 고씨네라는 늙은 홀아비가 혼자 살고 있었다. 고씨네는 논밭이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비가 조금만 내려도 수해가 나고 단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메마르는 박토여서 여간 가난하지 않았다. 그래서 고씨네는 매일 논밭에서 자신이 심은 곡식이 어서 자라기를 기원하였다. 가뭄이 계속되던 어느 날 애써 가꾼 곡식이 메말라 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가지에 막대기를 달아 아랫 논에서 웃 논으로 물을 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끼니를 거른 터라 지쳐서 쓰러지더니 몇 시간 후에 그만 죽고 말았다. 죽은 며칠 뒤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그의 논밭이 바라다 보이는 산마루 바위틈에 묻어 주었다.

     

    한편 같은 마을에 사는 전서방은 어느 날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논둑에 앉아 첫 숟갈을 뜨려는데 그 순간 눈앞에 고씨네 묘가 보였다. 전서방은 고씨네가 일평생 죽도록 일만 하다가 밥 한번 실컷 먹어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어찌 혼자만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첫술 밥을 “고씨네” 이름을 부르며 묘를 향해 던졌다. 그래서인지 농사가 다른 해보다 갑절 잘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후 고씨네 이름을 부른 다음에 밥이나 술을 던졌는데 그렇게 한 사람은 모두 풍년을 맞았다고 한다. 풍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옛날에는 풍흉은 바로 빈부의 분수령이며, 풍년이 들어야 생존할 수 있었으므로 빠짐없이 음식을 던졌는데 그것이 급기야 관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민담3

      한편 충남 아산에서 채집된 전설은 두 전설과 달리 인명이 등장하고 구체적이어서 사실감을 더해준다. 옛날에 도선이라는 풍수지리 전문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풍수지리 전문가인데도 오막살이에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도선의 명성을 들은 왕이 어느 날 평복 차림으로 그를 찾아왔다. 오막살이를 찾은 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 땅에는 귀신이라는 사람이 어째 이런 곳에서 사오?” 하고 물었다. 짚신을 삼다가 짚신을 찬 채 나온 도선이 대뜸“ 이 터가 좋은 곳이라 일국의 왕이 왕림하셨으니 이보다 더 좋은 터가 어디 있겠소이까?” 하고 대꾸했다. 왕이 아무도 모르게 변장하고 나섰건만 도선이 알아차린 것이었다.

     

    도선은 이처럼 용하였다. 그러나 자기 어머니의 묘 터를 정하지 못한 채 산지사방 헤매고 다녔다. 몇 달이 지난 후에 산등성이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도선은 커다란 기와집을 발견하고서, 날이 어둡기를 기다려 숨어들었다. 대청 밑을 호미로 막 파려는 찰라 안방에서 “ 도선이 아니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방문도 열리지 않은 채 또다시 “네 어머니를 모실 곳은 여기가 아니다. 저 건골징계 밍계 들에 모셔라” 하는 것이었다. 놀란 도선이 그 집에서 빠져나와 곧장 들에 가보니, 묘 터가 있긴 하나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곳에 친산을 정했다.

     

    그런데 밍계 들에 묘 자리를 정한 후 마을의 농사가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도선 모친 묘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에 참석한 집의 농사만 잘 되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들에서 일할 적에 밥을 내 가면 으레 그 묘에 밥 광주리를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농사가 잘 되었다. 그러나 먼 곳에서 농사 짖는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져올 수 가 없어 대신 먹기 전에 그 산소 쪽으로 밥 한술 떠 던지며 “고씨네”한 후에 먹었다. “고씨네”라고 한 것은 도선의 어머니가 고씨였기 때문이다.

     

      고씨네 유래를 담은 전설은 한결같이 풍년을 기원하는 약식 제사임을 밝히고 있다. 즉, 풍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늘에 천신이 살며, 땅에는 지신이 머문다고 믿어 왔다. 천신과 지신은 인간의 행동을 살펴, 선인에게는 상을 주거나 돕지만, 악인에게는 벌을 내리거나 징벌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 농사의 풍흉은 물론이고 질병 따위도 신이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들 신을 잘 받들어야 하며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을 받드는 행위란 제사다.

     

    그러나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제사를 차릴 수는 없으므로 준비한 음식을 미리 조금 천신함으로써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했던 듯하다. 비단 산과 들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먹기 전 뿐만 아니라 집안에서도 새로 장만한 음식, 갓 수확한 과일, 맛있는 고기나 생선을 마련했을 때 사당의 조상과 가택신에게 먼저 올리곤 하였다. 그리고 나서야 가족들이 먹었으며 그때에도 맛있는 것, 진기한 것이 있으면 웃어른께 먼저 드렸다. 바로 이러한 관습이 산과 들에서도 재현되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앞에서 본 전설에서 유래되었건, 조상 혹은 웃어른에게 먼저 올리는 관습의 연장이건 간에 고시레 풍속은 한국인의 넓은 인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음식을 혼자 먹지 않고 반드시 누구와 나누어 먹는다는 게 얼마나 훈훈한 인심인가. 바로 이 훈훈한 인정으로 인하여 한국인들은 아무리 적은 음식일지라도 숨어서 혼자 먹지 않고 나누어 먹는 버릇이 있다. 낯선 나그네가 지나치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면 으레 함께 먹자고 청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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