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절에서 공부하면서 얻은 다섯가지

ㆍ독백

지금으로부터 21년전, 고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에 마음잡고 공부하겠노라 절에 들어가 공부를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독서실에서 공부하는 것이 유행이었는데 외부와 접촉이 완전히 차단된 산 중턱에 위치한 제주도 불탑사에서 방학동안 기거하게 되었다. 성적은 그다지 높지 않았으나 새로운 경험과 출발점을 찾지 않으면 도저히 불만족스런 당시 상황에서 일탈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과감하게 마음을 잡기 위해 절에 들어가게 되었다. 절 생활은 생각보다 만만하지 않았다.



비록 짧은 여름방학 기간 동안이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청소년 시절 수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기회를 갖었던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호기심이 많고 사방이 바다로 이루어진 제주 바닥을 어떻게 하면 뜰 수 있을까 고민을 하고 계획을 세운 시점이 바로 절에서 공부할 때였다. 여름방학 동안 절에서 기거하면서 학업 공부 이외의 수 많은 질문을 던졌던 것들 중 몇 가지 정리해봤다.


왜 공부를 할까?

절에서 공부하는 방은 대웅전에서도 멀리 떨어진 곳에 하였으며 자연의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기 때문에 공부가 아주 잘 될 것 같았지만 너무 조용해서 공부보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떠올랐다.

나의 정답은 제주도를 벋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주도 평균 이상의 실력을 갖추어야 서울로 갈 수 있었다. 공부를 하는 이유를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공부 주위에 맴돌았고 밖에서 매미와 노는 것, 밤에 별을 보는 것, 바람 소리를 듣는 것, 낮잠을 자는 것등이 더 좋았다.


법구경

학교 공부를 하면서 틈틈히 부처님 말씀 공부도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의 인생에 불을 당기게 된 결정적 동기는 바로 부처님 말씀이 적힌 법구경이었다. "목이 마르면 그 누구도 대신 마실 수 없으며, 갈증이 나지 않으면 물을 마실 수 없으며, 갈증이 날 때 물을 찾게 되면 본인이 직접 물을 마셔야만이 갈증을 없앨 수 있다" 대략 이런 말씀이었는데 글을 읽는 순간 찌리리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의 개념

산 속의 절은 특수한 환경에 있다보니 주변 생활의 변화에 적응하는데 일주일 이상 걸린 것 같다. 티비도 없으며, 한 정된 물을 받아 샤워를 해야되며, 새벽 3시 3반에 아침을 맞는등 평소 일반 생활에서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많은 일들이 낯설기만 했다.

잡다한 것이 없으니 수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졌으며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하루가 너무가 길다는 것을 느꼈다. 일주일정도 생활하면서 절 생활의 메카니즘을 조금씩 알게 되어 공부 이외에 내가 어떤 일을 해야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후부터는 자연스럽게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부처님을 모시고 있는 법당 청소도 하게 되어 밥을 먹는 이유가 생겼다.

부처님이란?

수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에게 기도를 올리기 위해 법당을 찾아 온다. 도대체 부처님이 어떤 분이기에 수 많은 사람들이 돈을 올려 놓고 갈까? 고교시절의 궁금증이었다. 점차 절 생활에 적응하면서 부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불탑에서 훔쳐 왔던 돈들을 다시 도로 불탑에 올려 놓게 되었다.

내가 정의하는 부처님은 바로 내 자신이다. 단지 내 안에 부처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법당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을 찾아가는 것 같다. 법당에서 부처님에게 절을 하면서 우리는 수 많은 것들을 바라고 소원을 이루어달라고 기도하지만 부처님은 개심치레한 눈빛으로만 바라볼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나는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이 부처인데... 어찌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이 대답을 하겠는가? 단, 내 자신이 행복한 모습으로 불상을 바라보면 부처님도 행복해 보이고, 불상한 내 자신의 모습을 지닌 채 불상을 바라보면 부처님도 불상하게 보이게 된다. 

결국  '모든 일들은 내 자신에서 비롯되며 내 안의 부처를 찾을 때 비로소 부처님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자신이 곧 부처란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면 세상 모든 일이 술 술 풀리게 될 것이다. 절에 가면 나는 부처님에게 절을하면서 가끔 대화를 한다. '부처님, 요새 신도들이 너무 많이 찾아와 귀가 아플 것 같은데 어디 놀러 다녀오세요.' 라고 물으면 웃고 있는 부처님 불상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삶의 자세

방학이 다가오면서 절 생활을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면 아주 편하게 잘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절에서 잠을 잘 때에는 풀 숲속의 소리가 자장가처럼 아주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으나 집에서는 차 소리, 말 소리, 기타 잡음 소리등 때문에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

놀라운 경험이 될 줄 정말로 몰랐다. 자연의 소리가 인간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며 숨을 쉬는 공기 또한 자연과 함께 하면 맑은 정기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얼마나 시끄러운 곳에서 살 고 있는지 알게된 것이 절 생활에서 얻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말하기 이전에 먼저 듣는 자세를 배운 것이다.

눈내리는 풍경눈이 내리는 겨울에 촬영한 불탑사 풍경. 왼쪽 아래 문으로 들어가면 공부했던 요사채가 있다.


불혹의 나이에 접어들면서 서서히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 눈에 보이고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어떤 국가인지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공부를 하는 이유를 누군가 질문한다면 '마음의 그릇을 크게 만들기 위함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으며 어떠한 사념에 관한 것들을 개인적으로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짧은 고등학교 여름 방학 동안 절에서 공부를 하였지만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육체의 행동 반경은 한정되어 있지만 자신의 마음은 세상 밖으로도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일찍 알았기 때문에 제주도에서 벗어나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하는 아내와 세자녀를 얻을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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