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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팍타크로 인생, 조선일보에 나온 후 심정History 2010. 9. 4.
조선일보와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는지 몰라도 유년시절부터 떨어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결국 조선일보에 기사나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인생은 참 묘하고 재미있는 것 같다. 조선일보에 기사에 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인생의 맛이 어떤 것인지 조금 알게 된다.
부모님은 학자가 되기를 바라셨다. 세상 듣도 보지도 못한 세팍타크로라는 운동을 시작했다는 말에 부모님은 아마도 실망을 하셨을 것이다. 한번 발동이 걸리면 끝을 보는 성격을 발휘하여 국가대표가 되고 태극마크 츄리닝을 입고 고향집에 내려갔을 때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부모님은 늘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다. 왜냐하면 운동의 길은 외롭고 평범한 인생이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까지 운동하면서 부모님이 인정해주기를 원했다. 부모님은 운동한다는 사람 자체가 부모님에게는 한 없이 낮아 보였고 '밥은 제대로 먹고 살수는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많았다.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 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세명의 자녀를 굿굿하게 키우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대견해하시면서 세팍타크로를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이제는 걱정하지 않는다' 라는 말씀을 하신다.
누구도 걸어 보지 않는 생소한 세팍타크로의 인생을 산다는 것은 외롭고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 만큼 해야할 일들이 많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나간다는 생각을 하면 누구보다 즐겁고 행복하다고 할 수 있다. 91년 처음으로 세팍타크로 볼을 차기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함께 하고 있는 세팍타크로는 영원한 친구이가 되었다.
세팍타크로라는 한 우물을 계속 파다보니 저절로 세상을 보는 마음의 눈이 40대에 접어들 무렵 열리기 시작했다. 인생의 중반인 '불혹의 나에 접어들면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말이 딱 들어 맞는 것 같다.
2010년 9월 3일(어제)은 인생에 있어서 영원히 기억되는 날이 되었다. 고향집에서는 동네분들에게서 끊임없이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대문짝하게 신문에 나온 아들의 사진을 보신 어머님은 두 손을 모았다고 한다. 원래 눈이 좋지 않아 평소 글을 읽는데 힘드시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신문 기사를 전부 읽으셨다는 말씀에 감동이 밀려왔다.
조선일보에 기사가 나온 것으로 부모님께서 늘 걱정하시는 일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아들이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게 되어 한 없이 기쁘게 생각한다. 묵묵히 자신이 하는 일을 사랑하고 소중히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살게되면 자연적으로 세상을 흐림 없이 바라보는 눈이 열린다는 세상 이치 중 하나를 깨달게 되는 하루였다. '아버님,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리고 정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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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 미쳤어요!] 세팍타크로 '전도사' 고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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