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집 정리를 하다가 발견한 학생증과 전역증을 보면서 열정으로 가득했던 20대 시절의 일들이 머리 속에 스쳐 지나갔다. 제주도에서 서울로 올라와 꿈을 키웠던 젊은 시절의 모습은 정말로 나였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멋있게 보있다. 필자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게 된 것은 사실 결혼한 이후였으며 알고봤더니 원판이 나쁘지는 안았다.



한국체육대학교에서 처음 세팍타크로(Sepak Takraw)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학과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일반 학생으로 운동을 병행한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스포츠 지식을 통해 운동을 하게 되어 세팍타크로 기술을 이해하는데 무척 빨랐다. 이때만해도 스포츠 전 종목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농구, 축구, 야구등 프로축구에 세부적인 기록까지도 외우고 있었다. 몸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필자에게 한국체육대학교는 최고의 놀이터였다.

전생에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몰라도 세팍타크로를 알게 되면서 세팍타크로의 끝은 찾아 태국과 말레이시아로 떠나게 되었다. 말레이상와 태국은 세팍타크로 종주국으로써 서로의 장단점이 있으며 불교와 이슬람 종교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말레이시아에서는 직접 손으로 밥을 먹었으며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다.


고향이 그리워 의무경찰을 지웠했으며 이곳에서 사회의 어두운면을 경험하게 되었다. 아침과 낮에는 편히 쉬고 밤에 주로 활동하여 수색과 범인 검거에 과한 업무가 매일 같이 반복되었다. 많은 사람들을 잡았으며 제대 후 대인기피증에 걸릴만큼 집 밖으로 나가기가 어려웠다. 경찰이란 직업은 고귀한 직업이며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학교를 마치고 교사자격증을 획득하기 위해 국민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몸으로 겪은 것을 하나의 이론을 바탕으로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공부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팍타크로를 했던 것처럼 공부할 때도 시간가는 줄 몰랐다. 세팍타크로의 독특한 동작을 보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힘의 원리를 규명하는 스포츠 역학을 중요하게 생각되어 전공하게 되었다.
 
세팍타크로 내공을 향상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디든지 달려가고 배웠던 20대 시절의 순수했던 사진을 보게 되어 새로운 자극제가 되었다. '내가 정말로 이렇게 생겼었나?'라고 말이 저절로 나올 정도로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다. 물에 흠뻑 젖지 않고, 송어를 잡을 수 없듯이 물에 흠뻑 젖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받아들였던 20대의 아름다운 추억을 뒤돌아 보게 되었다.


[관련글]
'태국 세팍타크로' 삼성 스폰서쉽 제안서, 과연?
- 세팍타크로 인생, 조선일보에 나온 후 심정